성현제(成賢濟, Sung Hyunje)
1. 소년 시절
나는 1957년 4월 28일 한국 남동부의 도시 대구에서 태어났다.
3 형제 중 차남이었다.
초등학교는 집에서 2 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시내 버스(bus)를 타고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한번은 버스 요금을 덜 내니까, 버스 안내양 아가씨가 귀엽다며 버스 요금을 도로 내 손에 쥐어 주기도 했다.
하교 길은 버스를 안 타고 걸어서 집까지 올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길가의 건빵 가게에서 건빵을 사서, 걸으면서 먹곤 했다.
학교 공부를 잘하였고, 초등학교 전 학년 어린이 회장에 당선되기도 했다.
.또 경제 상공인들이 주최한 대구시 어린이 글짓기 대회에서 당선되었다. 그 상으로 서울까지 비행기로 여행하여 대통령을 알현하였다.
영부인께서 글을 잘 썼다고 칭찬해 주셨다.
초등학교 때 미국인 여자 선교사에게서 신약성서를 한 권 받았다.
"성경 공부를 열심히 한 것을 기념하여 성경을 드립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아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잠언 3:5 - 3:6)
-- 왕마려(王馬麗, Wang Maria)'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던 이경주, 조영택과 친하게 지냈다.
중학생 때 이들과 함께 대구시 중심가에서 20 km 떨어진 호수에 밤낚시를 갔었다. 식빵과 잼(jam) 을 사 가지고 갔었는데, 그 날 밤 나는 별똥별(유성,流星) 이 떨어지는 것을 처음 보았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매달 단체로 아침 일찍 싼 값으로 영화관에 영화를 보러 가고는 했다.
2. 청년 시절
나는 서울 대학교에 진학하여, 서울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대구 출신 남녀 대학생들이 동아리(서클,circle) 를 만들어 동아리 활동을 했다.
한번은 동아리 여자 대학생들이 서울 대학교에 놀러 왔었다. 나는 축구를 그리 잘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날은 여자 대학생들이 보고 있어서 였는지, 페널티킥(penalty kick) 연습을 하는데, 내가 차는 공마다 쑥쑥 골인(goal in) 되었다.
오빠 응원단 부대가 그래서 필요한 것인지......
동아리에서는 학년 말에 문집(文集,journal) 을 만들기로 했다. 나는 '열세 집단의 자아방어(Ego-defence mechanisms df minority groups)' 라는 논문을 실었다. 열세 집단이란 일본(日本) 사회에서의 재일동포, 중국(中國)의 소수 민족, 서구(西區) 사회의 유대인(Jews), 서울의 대학생 중 지방 출신 대학생 같은 전체 집단에서 소수를 차지하는 집단을 말한다. 열세 집단 구성원들의 자기 보호 심리에 대해 썼다.
여름 방학이라 대구에 내려왔다.
남자 셋, 여자 셋이서 밤낚시를 가기로 했다.
대구에서 북쪽으로 40 km 떨어진 낙동강 지류(支流) 로 갔다.
우리는 밤이 깊도록 모닥불을 피워 놓고 놀았다.
'모닥불 피워 놓고 마주 않아서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타다가 꺼지는 그 순간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라'
여름 방학이 끝나서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대학의 심리학과에서는 지리산에 4박5일 등정하기로 하였다. 서울의 용산역에서 지리산 인근 구례역까지 야간 열차를 타고 갔다. 나는 근처 기념품 가게에서 지리산 그림엽서를 사서, 지난 여름 밤낚시 갔을 때 마음에 두었던 여자에게 그림엽서를 띠웠다.
해발 1,500 m 의 노고단까지 하루종일 등반했다. 거기서 1박 하고, 다음날은 하루종일 산능선을 탔다. 또 1박 하고 계속 등정하여, 마침내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에 올랐다. 구름이 산 아래로 보였다. 일동은 거기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내가 서울에서 대구까지 내려가서 그녀를 만나곤 하다가, 우리는 깊은 관계가 되었다. 대구의 사진관에 함께 가서 우리는 약혼 사진을 찍었다.
나의 심리학과 졸업 논문의 제목은 '사람은 왜 웃는가' 였다. 사람은 다른 사람, 특히 적(敵)의 실패를 보았을 때 안도하여 웃는다.
나는 직장에 취직이 되었고, 내가 군대에 있을 때도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 갔다.
나는 군대에서 제대했고, 1982년 우리는 결혼하였다.
3. 직장 근무 시절
신혼 여행지는 한국 남동부의 도시 부산과 경주였다.
부산의 호텔(hotel) 라운지(lounge) 에서는 사진사가 신혼 부부가 너무 멋적다고 하며, 아내를 내 무릎 위에 앉히고서 사진을 찍어 주었다.
신혼 집은 서울 근교 안양의 아파트(apartment) 였다.
집을 중개한 부동산 중개업자가 우리를 축복해 주었다.
"부자 되세요."
1 년 남짓 거기서 살다가 서울로 이사했다.
첫 아이가 태어났다. 아들이었다. 아내가 첫째 아들의 이름을 성시언(成始彦, Sung Sieon)이라고 지었다.
아내에게 아이의 출생 신고를 관청 주민 센타 에 가서 해 놓으라고 부탁하고, 직장에 출근했다. 퇴근하고 집에 와 보니, 아내는 출생 신고를 하지 않았다.
이러기를 며칠......
아내는 계속 출생 신고를 하지 않았다.
마침내 분노가 폭발했다. 아내를 마구 때렸다.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갔다.
어디에 갔을까? 나는 며칠 간을 전전긍긍했다.
마침내 아내의 여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 집에 아내가 와 있으니 데려가라고 했다.
전철로 거기까지 가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아내와 시언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보니, 아내의 몸이 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내가 그렇게 심하게 때렸나 저으기 놀랐다. 나는 폭력을 경멸하는 사람이다.
시언이의 첫 돌 날이었다. 시언이를 일으켜 세워, 잡고 있던 두 손을 놓아 보았다. 깜짝 놀라 두 눈을 호동그레 뜨고 있는시언이의 모습이 앙증맞았다. (enfant terrible)
나는 그 모습을 카메라(camera) 로 찍었다.
퇴근해서 돌아온 나에게 아내는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시언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집 근처에 있었는데, 잠깐 어디 갔다 와 보니 시언이도 유모차도 없더란 것이었다. 아내는 잠시 혼이 나가 있었는데, 다행히 근처에서 시언이와 유모차를 찾았다고 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아들이었다. 내가 둘째 아들의 이름을 성시진(成始珍, Sung Sijin)이라고 지었다.
두 아이와 함께, 아내가 벌거벗은 채 잠들었다.
세 모자(母子)의 잠든 모습이 평화스러웠다. 아내의 벗은 몸을 이불로 대충 가리고, 세 모자의 모습을 나는 카메라로 찍었다.
1980년대 말(末)이었다.
세간에서는 컴퓨터(computer) 업계의 거인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 사가 하드 디스크(hard disk) 를 장착한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 인 PC-XT를 발표하여 일대 선풍을 일으키고 있었다. 초소형 기적(micro miracle) 이었다.
나는 은행 직장 생활 10 년이 다 되도록 이렇다할 승진을 하지 못해 불만이었다.
'조직 생활에서는 나의 편 아니면 너의 편이지 그 중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에는 나의 소견이 부족하였다.
한번 직장의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는 무엇에게서인지 쫓기는 기분이었고, 혼자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궁여지책으로 해외 지점 근무를 신청하였다.
싱가포르(Singapore) 지점이었다. 영국(英國)은 20세기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나치 정권의 유대인 학살을 수수방관한 노쇠한 나라였다. 런던(London) 지점은 아니었다.
해외 지점 근무 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990년 나는 직장에 무작정 사표를 쩨출했다.
4. 비디오 테이프 대여점(video tape rent shop)
아내가 아파트(apartment) 입구의 상가(商街)에서 비디오 테이프 대여점을 하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되었다.
아내는 나를 '고장난 돈벌이 기계'라고 했다.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시언이가 프로 야구 텔레비전(television) 중계를 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이 심상치 않았다.
시진이를 데리고, 동네의 '호화반점(luxury Chinese restaurant)'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중국 음식점에 들어갔다. 나는 점심 식사를 이미 했었고, 시진이는 아직 점심을 먹지 않았었다. 시진이에게 싸고 맛있는 짜장면 한 그릇을 사 주었다.
그리고 시진이와 함께 서울 시내 중심가의 철물점 상가에 버스(bus)를 타고 갔다. 서서 피울 수 있는 담배 재떨이를 거기서 하나 샀다.나는 재떨이를 아내의 비디오 가게에 놓아 두었다.
나는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는 핑계로, 아내의 귀가길에 한 번도 마중나가지 않았었다.
어느 날 밤, 나는 집 아파트에서 비디오 테이프 대여점까지 1 km 남짓한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렸다. 상가의 철제 문은 닫혀져 있었다. 나는 철제 문을 두 손으로 잡고 마구 흔들었다.
오래 전 미남 배우 신성일이 주연한 '맨발의 청춘"이라는 한국 영화를 보았었다. 신성일은 나의 고등 학교 선배 동창이다.
'눈물도 한숨도 나홀로 집어삼키며
밤거리의 뒷골목을 누비고 다녀도
사랑만은 단 하나에 목숨을 걸었다
거리의 자식이라 욕하지 말라
그대를 턔양처럼 우러러보는
사나이 이 마음을 알아 줄 날 있으리라'
어느 날 나는 시진이가 웬일로 초등학교에서 늦게 귀가해서 걱정했었다.
한참 후 시진이가 상기된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버스를 탔는데, 내려야 할 데를 지나쳐서 서울 시내 중심가까지 갔다가 오는 길이라고 했다. 운전 기사 아저씨한테 이야기했더니, 그냥 앉아 있으면 갔던 길로 다시 돌아온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고 한다.
책이든 영화든 다시 읽고 싶은 책, 다시 보고 싶은 영화가 있게 마련이다.
인간의 망각을 극복하고 개인의 소유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DVD(digital video disk) 가 제격이다. DVD 플레이어(DVD player)를 갖춘 집도 있으니까, DVD 판매점을 해 볼까 하고 내가 생각한 적도 있었다.
'영상(映像)을 소유한다는 꿈이 실현되고 있다.
5. 영어 번역가(English-to-Korean translator)
신문의 구인 광고 난을 통해 새 일자리를 얻게 되었다. '프로랭스(Prolahgs)'라는 번역 회사의 영문(英文) 번역 프리랜서(freelancer) 였다.
회사는 서울 시내 중심가에 있었지만, 대중 교통으로 집에서 한 시간 반 걸리는 거리였다. 사장과 직접 만나지는 않았고, 강영숙이라는 여직원이 일거리를 알려 주었다.
미국(美國) 상무부(商務部,Department of Commerce) 에서 간행한 '미합중국 스펙트럼 관리 정책(U.S. Spectrum Management Policy )'이라는 영문 서적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일이었다.
한국의 통신 개발 연구원에서 번역 의뢰한 것이었다.
'미합중국 스펙트럼 관리 정책'의 내용은 미국 정부의 통신 주파수 할당 정책에 대한 미국 내 주요 기업들의 의견을 종합한 것이었다.
곧 휴대폰(cellular phone) 이 개발된다고 해서, 세간에서는 이동통신(移動通信, mobile telecommunication) 이 붐(boom) 을 이루고 있었다.
혼신의 힘으로 집에서 번역 작업에 몰두했다. 피말리는 작업이었다.
1 주일에 한 번 씩 번역물을 회사에 가져다 주었다. 두어 달 번역하여, 마침내 꽤 두꺼운 책 한 권을 번역할 수 있었다.
번역료로 받은 돈으로 켄우드(Kenwood) 사의 오디오(audio) 제품을 샀다. 라디오 튜너(radio tuner), 시디 플레이어(CD player), 앰프(amplifier),,스피커(speaker) 등을 갖추게 되었다.
집 근처의 서점에서 프랑스(France) 작가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Le Petit Prince)' 오디오 북(audio book) 을 샀다.
'어린 왕자' 시디(CD) 는 우리 아이들이 듣게끔 놔 두고, '어린 왕자' 책을 강영숙 씨에게 선물했다. 그 때 강영숙 씨는 임신 중이었다. 나는 강영숙 씨가 왕자님을 순산하기 를 빌었다.
1992년, 미국에서는 콜럼버스(Columbus)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 500 주년 기념 행사가 성대히 열리고 있었다.
나는 책을 번역한 업적을 인정받아, 한국 번역가 협회 회원이 되었다.
**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 중에서
"길들여진다는 게 뭐지?"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건 너무 잘 잊혀지고 있는 거지.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여우가 말했다.
여우는 입을 다물고 어린 왕자를 오랫동안 쳐다보더니
"부탁이야... 나를 길들여 줘!" 하고 말했다.
다음 날 어린 왕자는 다시 그리로 갔다.
"언제나 같은 시각에 오는 게 더 좋을 거야."
여우가 말했다.
"이를테면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난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4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 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아무 때나 오면 몇 시에 마음을 곱게 단장해야 하는지 모르잖아. 올바른 의식이 필요하거든."
"잘 있어." 어린 왕자가 말했다.
"잘 가." 여우가 말했다.
"내 비밀은 이런 거야. 아주 간단해. 오로지 마음으로만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잘 기억하기 위해서 어린 왕자가 되뇌었다.
** 인간의 감각
인간의 감각에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육감, 중압감, 평형 감각, 시간 감각이 있다.
머음의 눈(심안,心眼)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눈(眼,eye)은 마음의 창(窓,window)이다.
** 가치
가치있는 것으로는 진(眞,truth), 선(善,goodness), 미(美,beauty), 성(聖,holiness) 등이 있다.
"정의(正義,justice)가 선에 우선한다." 라고 마이클 샌들(Mikel Sandel) 미국 하바드(Harvard) 대학교 교수가 말했다.
악을 선으로 대하면 선은 무엇으로 대해야 하나...
6. 빛을 찾아서
색(色,color) 의 삼원색은 빨강(red), 노랑(yellow), 파랑(blue) 이다.
빛(光,light) 의 삼원색은 빨강(red), 파랑(blue), 초록(green) 이다.
나는 허리를 다쳐서 대학 병원에 입원하였다.
어머니께서는 호들갑스럽게 물침대까지 사 주셨다.
병원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어느 날 갑자기 말 그대로 눈 앞이 캄캄해지는 것이었다.
어쨌든 퇴원하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평소에 한의학에 관심을 가져서, 집에는 한국 중세 조선 시대 허준이 편찬한 방대한 의서(醫書) '동의보감' 한글 번역판까지 가지고 있었다.
한의학 오장육부론
장(腸) 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
부(腑) 담 소장 위 대장 방광 삼초
감각 기관 눈 혀 입 코 귀
맛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짠맛 떫은맛
칠정(오지) 노(怒) 희(喜)사(思)우憂 공恐'
동의보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구기자(枸杞子) -- 탕액편
구기자는 구기나무의 열매이다.
성질이 차고(평하다고도 한다) 맛은 쓰고(달다고도 한다) 독이 없다. 내상이나 심한 허로로 숨을 몰아쉬는 것을 보하고, 힘줄과 뼈를 튼튼하게 하며, 음(陰)을 강하게 하고, 각종의 과로에서 생기는 병을 치료하고, 정기의 손상을 낫게 한다. 정력과 기운을 보충하여 얼굴 빛을 젊어지게 하고, 눈을 밝게 하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오래 살 수 있게 한다.'
다행히 동네의 백화점 수퍼마켓(supermarket) 에서는 구기자 차(茶) 분말 제품을 팔고 있었다.
나는 구기자 차 분말 제품을 사 와서, 꾸준히 물에 타서 마셨다.
한 달이 채 못 가서 다시 눈이 밝아졌다.
여름 휴가 철이 되었다.
아내는 부산에서 살고 있는 자기 여동생 네 집에 놀러 가자고 했다.
집안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물침대를 차(車)에 싣고, 아이들을 데리고 아내와 함께 항구 도시 부산으로 갔다.
물침대에 공기를 넣으니, 물침대는 좋은 물놀이 튜브(tube) 가 되었다.
바다에 뛰어들어 물침대를 가지고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 나는 카메라(camera)를 들이대었다. 아이들은 손가락으로 브이(V) 자를 그려보이며 포즈(pose) 를 취했다.
삶은 생각하는 자에게는 희극이지만, 느끼는 자에게는 비극이다.
7. 휴대폰 문자 메시지
국가와 상품 명 ( nation vs brand )
경쟁과 협동
지성인과 신사 ( intelligentsia vs gentleman )
도적과 거지 ( burglar vs beggar )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이다.
( It is never too late to start.)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한국 속담)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 Where there is a will, there is a way. )
안되면 되게 하라.
내 사전에 후회는 없다.
부지런한 꿀벌은 슬퍼할 겨를이 없다.
8. 아들들에게 보내는 이메일 1
공부를 할 때 마음이 콩 밭에 가 있으면 공부를 잘 할 수가 없다.
정신일도하사불성 精神一到何事不成
정신일도금석가투 精神一到金石可透
정신을 한 곳에 모으면 무슨 일이 안 되겠으며
정신을 한 곳에 모으면 쇠나 돌도 뚫을 수 있다
라는 말을 나는 좋아 한다.
호랑이인 줄 알고 온 힘을 다해 화살을 쏘았는데 알고 보니 바위라, 화살이 바위를 뚫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할 때 아이디어(idea)가 사라지는 일이 간혹 있다.
사람의 기억에는 장기 기억(long-term memory)과 단기기억(short-term memory)이 있다.
수면은 단기 기억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수면 장애 때문인지 나이 때문인지, 단기 기억 능력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다.
사과는 잠을 좋아하게 해 주고(영인호수, 令人好睡), 인삼은 잊지 않게 해 준다. (영인불망, 令人不忘)
현대(現代)는 육체적으로는 편한 세상이지만, 정신적으로는 불편한 세상이다.
나의 이익은 내 상대방의 손실이다. 장사(商, commerce)는 힘든 직업이다.
사회 생활에서 나이 차이 아래 위로 10 년은 동년배라고 생각한다.
9. 아들들에게 보내는 이메일 2
술,담배,커피(coffee)는 정신에 관련되고, 우유는 육체에 관련된다.
술,커피, 우유는 액체이고, 담배는 기체이다.
대표적인 액체인 물은 모양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유연성, 융통성이 자랑이다.
대표적인 고체인 땅은 성실함이 자랑이다. 땅은 뿌리는 대로 거두는 법이다.
대표적인 기체인 공기는 우리가 그 중요성을 모르지만, 공기 없이는 사람은 한 순간도 살지 못한다. 이는 사람이 자유(自由)의 소중함을 자유를 잃은 다음에야 아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공기와 물괴 불이 있어야 인간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전기(電氣, electricity)를 이용하는 현대(現代)는 편한 세상이다. 모름지기 사람은 전기의 고마움을 알아야 한다.
가설을 세우고(making hypothesys), 겅증하고(testing), 이론을 수립하는 것(building theory)이 과학(science)의 체계이다.
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가치있는 일을 상대방이 할 때는 그를 질투하지만, 나는 할 수 없는 가치있는 일을 상대방이 할 때는 그를 존경한다.
목표는 샌 프란시스코(San Fransisco)이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너희들이 그 곳에서 사는 것을 보고 싶다.
10. 휴대폰 통화
** 아내와 퐁화
"빅 뉴스(big news)야.
오늘 성당에 가다가 길에서 넘어졌어.
나는 죽어서 천당에 갈거다.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성당에 갔거든."
** 아들과 통화
"아버지가 책을 읽어도 읽을 때는 내용을 이해하지만 읽고 나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컴퓨터 시디 라이트(CD write) 기(機)가 고장이 나서 라이프가 안 되는 거야."
** 친구 상무균과 통화
"나는 어제 밤 잠도 못 잤다.
너한테 빌린 돈 갚을 생각에...
꼼짝말고 변호사 사무소에 있거라.
내가 쓴 책으로 대물변제 하겠다.
의사하고 변호사가 망해야 좋은 나라 아닌가.
아무튼 사업 잘 되었으면 좋겠다."
11. 꿈
가족과 헤어진지 십여 년이 되었다.
그 동안 꿈을 여러 번 꾸었다.
첫 번째 꿈은 가족과 헤어진 직후에 꾼 것인데, 두 아들을 앉혀 놓고 일장훈시를 꿈 속에서 했다.
"모름지기 남자는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그의 집 우편 번호와 집 주소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의 집을 찾아 갈 수 있어야 한다."
그 꿈을 꾼 이후로는 우체국에서 간행한 '전국 우편 번호부'를 새 눈으로 보게 되었다.
두번째 꿈은 영화 '공룡 시대'에서와 같이 거대한 공룡들로 뒤덮이는 것이었는데, 해저 빌딩(building)들을 마린 보이(marine boy)들이 지나가고, 동굴 속에서 막대한 보석을 찾아 내고 그런 꿈이었다. 깨고 나서 아파트(apartment) 베란다(veranda)에 나가 보니, 화초 화분들만 무성하고 주위는 아침이라 고요했다.
세 번쩨 꿈은 중년의 남자가 컴퓨터(computer) 부분품인 메모리 칩(memory chip) 두 개를 들어 보이고 있었다. 메모리 칩에는 삼성(三星, Samsung) 상표가 찍혀 있었고, 그의 눈 아래로 까만 반점이 더덜더덜 크게 보이는데, 중년 남자는 빙긋이 웃고 있었다. 그 무렵 눈곱이 끼어서 귀찮아 했는데, 꿈도 그런꿈을 꾸게 된 것 같았다.
네 번째 꿈은 미국(美國)에 초대받는 것이었다. 부시(George Bush) 대통령은 옆에서 지켜보고 있고 클린턴(Bill Clinton) 대통령이 자리의 여러 사람들을 환댸하고 있었는데, 빈 자리가 있는 꿈이었다.
다섯 번째 꿈은 미국 샌프란시스코(San Fransisco)로 가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미국 본토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은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것이다. 경 비행기 조종석 뒷 자리에 누워서 가는 꿈이었다.
여섯 번째 꿈은 체조 가두 퍼레이드(perade)를 비디오 캠코더(video camcorder)로 촬영하여 교회 신자(信者)들에게 판매하는 꿈이었다. 그 무렵 매달 생활비를 어떻게 마련하나 고민했었는데, 그런 꿈을 꾸게 된 것 같았다.
일곱 번째 꿈은 아파트 베란다에서 밖을 내다보는 꿈이었다. 큰 아들은 보이는데, 작은 아들이 잘 안 보였다.
여덟 번째 꿈은 서울 관악구에 있는 서울 대학교 병원에서 처제 한영미 부부 내외와 승용차로 봉천동 고개를 넘는 꿈이었다. 보름달 속에 토끼 모양의 한반도가 보였다.
*** 끔 길밖에 길이 없어 꿈길로 가니
그 님은 나를 찿아 길 떠나셨네
이 뒤엘랑 밤마다 어긋나는 꿈
같이 떠나 도중에서 만나를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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